상세설명
충청 이남 지역에서 공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가 있다.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견준산 기슭의 고개로 우금고개, 우금재 또는 비우금 고개라고도 불리는 험하지 않은 고개이다. 이 고개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최후의 격전을 벌인 장소이며, 이곳에는 「동학혁명군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그 사연인 즉, 우금치는 동학혁명군에게 있어 중부지역의 거점인 공주 점령의 기선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1894년 9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재봉기를 했다. 일단 우금치를 장악하여 향후 전쟁을 이끌어 나가려던 동학농민군은 우금치 점령을 위해 죽검(竹劍)으로 관군과 일본군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의 총칼에 맞서 싸우다 결국 거의 전멸하게 되었다. 이후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73년 이 고개에 동학혁명위령탑이 세워졌으며, 우금치는 사적 387호로 지정되었다.
그 사연인 즉, 우금치는 동학혁명군에게 있어 중부지역의 거점인 공주 점령의 기선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다. 1894년 9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재봉기를 했다. 일단 우금치를 장악하여 향후 전쟁을 이끌어 나가려던 동학농민군은 우금치 점령을 위해 죽검(竹劍)으로 관군과 일본군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의 총칼에 맞서 싸우다 결국 거의 전멸하게 되었다. 이후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73년 이 고개에 동학혁명위령탑이 세워졌으며, 우금치는 사적 38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