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금산 향교는 원래 조선 초기에 금산읍 하옥리 백학동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이후 다시 세워진 것으로 전한다. 1684년(숙종 10년)에 향교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짓고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다.
금산 향교는 이같이 전통양식의 공간 배치를 충실히 하고 있다. 제향 공간 높이 쌓은 단 위로 대성전(大成殿)을 두고 대성전 앞 마당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강학공간은 높이 쌓은 단 위의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명륜당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제와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철(先哲)을,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賢)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향된 인물의 배향 순서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명륜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의실이고,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숙소였다. 그밖에 외삼문(外三門), 내삼문(內三門) 등이 남아있다.
금산 향교는 이같이 전통양식의 공간 배치를 충실히 하고 있다. 제향 공간 높이 쌓은 단 위로 대성전(大成殿)을 두고 대성전 앞 마당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강학공간은 높이 쌓은 단 위의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명륜당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동제와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철(先哲)을,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賢)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향된 인물의 배향 순서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명륜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의실이고,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숙소였다. 그밖에 외삼문(外三門), 내삼문(內三門) 등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