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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의사
1972년 10월 사적 제22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윤봉길의사(1908.6.21~1932.12.19)의 유적은 그가 태어나서 자란 집 광헌당과 중국 망명길에 오르기 전까지 살았던 집 저한당, 농촌 계몽운동을 벌였던 부흥원이 있는 영역과 충의사 본전, 윤봉길의사기념관, 어록탑, 사적비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영역이 국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충의사 광장에서 홍살문 지나 삼문을 열고 들어서면 앞면 3칸 옆면 2칸, 겹처마 팔작집 양식의 콘크리트 건물 충의사가 단정한 모양을 하고 있다. 지면보다 한 단 위 자리 잡고 있는 이 사당은 아이보리색과 회백색으로 단장하여 바라만보아도 경외심이 일 정도로 엄숙하다. 윤의사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는 이곳은 참배객들이 향을 올리며 참배할 수 있도록 향과 향로를 비치하여 참배객이 온전한 참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윤의사 생가와 성장가 그리고 부흥원>
윤의사 기념관을 나와서 유적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40번 국도를 건너면 윤의사의 생가, 성장가, 부흥원 등의 건물이 복원되어있는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중국망명 전 윤의사가 나고 자라 성인이 돼서 사회활동을 한 유적지로 1908년 6월21일 윤황과 김원상의 아들로 태어나서 ‘장부출가생불환’이라는 비장한 유서를 남기고 1930년 3월 6일 중국망명길에 오를 때 까지 22년간, 그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그가 태어난 집인 도중도 광헌당과 그의 나이 4살 때 이사해서 성장하기까지 지냈던 개울 건너 집이자 성장가인 저한당이 복원되어 있는 이곳은 문맹퇴치를 위해 야학을 개설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농촌계몽을 목적으로 저술활동을 하면서 구체적 농촌개혁운동을 실시하기 위해 1928년에 세운 부흥원도 함께 복원되어 있다.
<소박한 부농의 집 윤의사 성장가>
성장가로 들어서려면 돌담으로 둘러쳐진 넓은 공간을 지나야한다. 1929년 윤의사가 농촌발전을 위하여 조직한 월진회사무실이 복원되어 있는 넓은 마당은 윤의사 동상과 의거기념탑이 조성되어 있다. 이공간의 서쪽 끝에 윤의사의 성장가가 복원되어 있다. 윤의사 성장가는 문간방과 광채가 딸린 ㄱ 자 집 문간채는 앞면 3칸, 옆면 3칸의 부엌 딸린 남향의 초가삼간집과 마주보는 자리에 북서향을 하고 있다. 문간채와 마주보는 남향의 초가삼간은 안채. 나라를 건진다는 의미의 ‘한저당’ 이다.
윤의사의 성장가는 또 안채보다 규모가 작은 부엌 딸린 초가삼간을 서쪽에 배치해 전체적으로 튼 ㅁ 자 집의 구조를 하고 있다. 소박한 부농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집이다. 안에 윤의사의 초상이 놓여있는 문간방은 윤의사가 한학을 마치고 돌아와 문맹퇴치의 일환으로 야학회와 농촌부흥운동을 처음 시작한 방이다.
<왜놈의 발길 없는 도중도>
윤의사가 태어난 생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도중도(島中島). 한반도 가운데 섬이라는 뜻의 이곳은 두 줄기의 물줄기가 지나며 형성된 배 모양의 섬으로 사방이 냇물로 둘려있다. 이곳은 왜놈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하며 윤의사가 직접 섬 이름을 지은 곳으로 윤의사는 이곳에서 망국의 한을 삭히며 독립운동의 의지를 불태웠다 한다.
윤의사의 생가인 광현당은 그의 증조부 때부터 거처하여 1974년 정부에서 중수를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집의 안채는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집으로 남향을 하고 있다. 집의 서쪽 끝 칸은 대청을 들이고 동쪽 끝 칸은 부엌을 들인 이집은 안방과 윗방이 있고 윗방과 대청사이에 독립된 방이 있다. 안채와 마주보고 있는 문간채는 내외벽이 딸려있어 우리 전통건축양식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 이용안내
매주 월요일 휴관, 3월부터 10월까지는 09:00~18:00, 11월부터 2월까지는 09:00~17:00 개관. 주차장 사용료는 무료이고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청소년 500원, 어린이 300원 단체적용은 하지 않는다. 문의전화 041-339-8231~8. 홈페이지 www.chunghyo.net
●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충의사,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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