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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훈 기념관, 논산의 대표 독립운동가 한훈선생을 만나다

2024.04.29(월) 14:54:09 | 일상의 소중함 (aegi0000@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독립운동을 빼 놓을 수 없는데 최근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 외에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기념관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충남 논산에도 광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활동했던 한훈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이 있다기에 그 분의 업적이 궁금해 관람을 다녀왔습니다.



한훈기념관은 본래는 고택복원사업으로 시작했지만 고증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 기념관 건립을 하는 것으로 변경하였고 2021년 8월에 개관하였습니다.
기념관이 있는 이 곳은 한훈 선생의 옛 집터이며 기념관 마당은 샘터가 있던 자리입니다.
현재 집의 형태는 남아 있지 않지만 샘터가 있던 곳에 우물을 복원 설치해 두었습니다. 



깔끔한 전시관으로 들어가니 해설사분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으며 천천히 한훈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먼저 영상으로 한훈 선생과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데 언제나 그렇듯 이런 가슴아픈 역사를 마주하면 마음이 아파옵니다.



한훈기념관은 체험수첩을 가지고 스탬프투어를 하며 즐길 수 있습니다.
6개 지점에서 학습을 진행하고 도장이 있는 지점에서 확인 도장을 찍을 수 있으니 초등학생 고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역사공부도 하고 스템프투어도 하며 즐겁게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한훈 선생은 1898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한우석으로 침착하고 대담한 성격의 인물이었다고 전해집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의병이 되었는데 이 배경에는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외숙의 영향이 있었고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형 한태석은 평생 서로에게 든든한 독립운동가의 동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건으로 알려진 김상옥과 동지였으며 일본 군경과 시가지 전투를 벌이다 자결, 순국한 김상옥 의사의 유족을 도왔고 사돈의 연을 맺기로 약속했던 것을 지켜 한훈 선생의 딸과 김상옥 의사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려 사돈이 되었습니다. 



전시실에는 족보, 휴대했던 시집 등 한훈 선생과 관련된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직접 장석한 이력서에는 출생부터 광복까지 활동이 친필로 기록되어 있으며 필체만 보아도 침착했던 성품이 느껴집니다.



1907년 한훈 선생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을사오적 처단을 결의였지만 활동 중 몇몇이 왜경에 잡혀가게 되며 목적이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의병을 모집하여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다 만주로 망명하였고 1911년에 귀국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북 풍기에서 광복단결사대를 조직하였으며 친일 부호를 응징하거나 군자금을 모금의 길을 모색하고 독립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는데 1915년에는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과 연합한 광복회로 통합해 친일 부호들에게 두려움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의병활동 당시 사용했던 권총과 단검도 전시되어 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권총을 집접 보니 꽤 무거워보였고 일반 국민들은 쉽사리 하지 못했던 일을 앞장 서서 하셨다고 생각하니 존경스러웠습니다.



한훈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920년 독립군을 양성하고 총독과 정무총감 이하 일본 귀족과 조선인 형사를 암살하는데 목적을 둔 조선독립군사령부를 조직하였고 상해로 가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을 초대해 만찬회를 개최하고 조선독립군사령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사진자료를 통해서 그 당시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모두들 결의에 찬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전시관 가운데에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입구에서 김좌진 장군, 한훈선생, 김상욱 의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오른쪽에 의상도 준비해 두었으니 의상을 입고 사진을 남길 수 있으며 바닥에는 을사늑약에 찬성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5인인 을사오적 이완용, 이지용, 권중현, 이근택, 박제순의 얼굴과 이름이 있는데 사진을 남기려면 자연스레 얼굴을 밟고 서게 됩니다.



한훈 선생의 광복단결사대와 김상옥의 암살단은 1920년 조석 총독 및 정무총감을 암살하기로 계획했지만 거사 전날 왜경이 김상옥의 집에 들이닥치며 암살단 취의서를 비롯한 암살담원 명부, 경고문 등이 압수되며 거사는 미수에 그쳤고 한훈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16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한훈 선생은 19년간 옥중생활을 하였으며 고문 학대 끝에 단식 항쟁을 이어다가 큰 병에 걸려 형집행정지로 출소하였고 그 당시 선생이 갇혀 있었던 공간도 재현해 놓았는데 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셨다니 다시 또 마음이 아파옵니다.
해방 후에도 광복단의 활동은 이어졌고 자주독립국가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예쁜 꽃이 붙어 있는 이 공간은 한훈 선생을 추모하는 공간입니다.
꽃모양, 나뭇잎 모양의 메모지에 한줄 씩 적어 놓은 메모가 벽을 가득 채웠고 모두 같은 마음인 것 같았습니다.



해방 후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이념의 갈등과 무력 출동로 혼란스러웠을 당시 한훈 선생은 반공주의 성향을 보였고 이 때문에 인민군에 체포되 납북 당하던 중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해설사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천천히 둘러본 한훈기념관에서는 한훈 선생의 일대기를 살펴볼 수 있었으며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의 이야기라서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독립운동가 한훈 선생의 이야기가 있는 한훈기념관, 충남 계룡시에 간다면이곳을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한훈기념관
충남 계룡시 신도안면 계룡대1로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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