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설명
충청수영성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돌로 높이 쌓아 올린 석성이다.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축성했다. 충청수영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은 자라 모형의 지형 위 높은 곳에 치성 또는 곡성을 두며,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피는 해안방어 요충지로 활용됐다. 사방에 4대 성문과 소서문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영보정, 관덕정, 대섭루, 능허각, 고소대 등이 있었으나 허물어졌다. 서문 망화문과 진휼청, 장교청, 공해관은 보존되고 있다. 주변 오천항은 백제 때부터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라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많은 군선을 두었으며, 세조 12년(1466년) 수영을 설치, 충청수군의 최고사령부로 서해안을 방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