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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코스 나 홀로 조용히 둘러본 홍성 성지순례

나 홀로 조용히 둘러본 홍성 성지순례

  • 홍성역
  • 홍성 천주교 성지 순례의 시작, 생매장순교성지
  • 고난의 시작, 조양문과 저잣거리
  • 백년 박해의 현장 홍주성
  • 박해시기 홍주 최대의 순교 터, 홍주 옥
  • 충청지역 최초의 순교자를 낸, 신앙증거 터 목사 동헌
  • 홍주 형장 터 그리고 황일광 시몬 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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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점

    TOP 홍성역

    홍성역

    내포(內浦)는 순수한 우리말로 「안-개」라 한다. 사전적 의미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휘어들어 간 부분」을 뜻한다. 조선시대 내포를 지칭하는 지역범위는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언급한 가야산 주변 10여 고을을, 좀 더 큰 범위는 조선시대 지역행정 중심지였던 홍주목과 관련한 홍주진관 소관의 20여 고을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경국대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 전기에는 홍주에 목사, 판관, 교수가 파견되어 있었고, 조선 후기 홍주목에는 정3품의 목사가 부임하였다. 당시 홍성은 조선시대 목사가 주재하는 충청우도의 지방행정 중심도시였는바, 홍주․보령․대흥․예산․갈산․서산․태안․해미․당진․명천 등 차령산맥 북서부지역의 여러 고을을 관장했다.
    조선후기 천주교 100년 박해의 역사에 있어서 홍주는 홍주진영의 목사가 관할했던 형장이나 다름없다. 동시에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한 순교 터이기도 하다. 홍주성지와 함께하는 충남여행은 홍성읍에 소재하고 있는 천주교 박해의 현장을 돌아보며 홍주성의 옛이야기도 들어보는 성지순례 겸 역사산책 여행이다. 여행의 시작과 마무리는 홍성역에서 한다.
    ●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홍성역,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조양로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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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 약 4분 / 1.57km

  • 2 지점

    TOP 홍성 천주교 성지 순례의 시작, 생매장순교성지

    홍성 천주교 성지 순례의 시작, 생매장순교성지

    1866년, 병인박해가 계속되던 해에 원머리(현 당진곤 신평면 한정리) 출신 최법상 베드로, 김조이루치아, 김조이 마리아 원 아나타시아 등은 한날한시에 체포되어 홍주성으로 끌려온 후 혹독한 고문과 문초를 당했다. 그래도 배교를 하지 않자 산채로 구덩이에 묻어 죽이라는 생매장형을 받고 순교의 길을 간 자리가 ‘생매장순교성지’다.
    생매장형을 받은 4명의 순교자 외에도 홍주성 안에서 옥사나 교수형으로 순교한 이들의 시신도 생매장터 인근에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생매장순교성지는 제단을 중심으로 동장만한 크기의 야외성당이 마련되어있다. 제단의 뒤에는 거대한 표석과 함께 ‘홍주천주교순교성지비문’이 나란히 세워져있고 천변에 비석과 성지 안내판이 설치되어있어 성지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 다음 순례지 조양문과 저잣거리 찾아가는 길
    내비게이션 이용 명칭검색: 조양문,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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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 약 5분 / 761m

  • 3 지점

    TOP 고난의 시작, 조양문과 저잣거리

    고난의 시작, 조양문과 저잣거리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으로 문을 통과하면 홍주성의 대로인 저잣거리로 들어서게 된다. 옛날 홍주성의 중심거리였던 이 길의 첫머리, 현재 KT건물이 있는 곳이 진영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 홍주성으로 잡혀온 천주교신자들이 처음 문초와 고문을 받던 진영에서는 배교를 하는 자들은 돌려보내고 배교를 하지 않는 신자들을 다시 동헌으로 압송하였다.
    저잣거리는 한 고장의 중심상권이 형성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중심거리로 진영에서 동헌으로 끌려가는 천주교신자들은 이 거리를 지나야했다. 거리에 나와 있던 구경꾼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당하며 천주교신자들이 지나간 이 길, 저잣거리는 백년 박해 그 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 다음 순례지 홍화문 찾아가는 길
    내비게이션 이용 주소검색: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135-5(홍화문 인근 민가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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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 약 1분 / 109m

  • 4 지점

    TOP 백년 박해의 현장 홍주성

    백년 박해의 현장 홍주성

    홍주성은 사적 제 231호로 1972년 10월부터 지정·관리되고 있는 성곽문화유산이다. 성 전체가 천주교 박해역사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성은 축성당시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다 한다.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현재 남아있다. 다음 성지인 ‘홍주 옥 순교성지’로 가기 전 순례의 발길을 잠시나마 천주교 박해의 역사로 얼룩진 홍주성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 싶다.
    조선시대의 도시는 각 지방의 중요한 행정중심지로서 대부분 성곽으로 둘러싸여있고 성내는 행정기관인 동헌(東軒)을 중심으로 객사(客舍), 향청(鄕廳), 옥사(獄舍), 훈련청(訓練廳) 그리고 교육기관인 향교(鄕校), 시장인 장시(場市) 등이 중심이 되어 시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홍주성도 예외는 아니다. 홍주성은 조선시대 목사(牧使)가 주재하는 충청우도의 지방행정 중심도시였는바, 당시 죄인으로 지목당한 천주교신자들을 심문하고 옥에 가둘 수 있는 권한까지 갖고 있었다.
    ● 다음 순례지 홍주 옥 찾아가는 길
    도보안내: 홍화문에서 오른쪽 북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주차장 언저리 성벽 쪽으로 한식 건축물이 보인다. 이곳이 목적지다. 이동거리는 0.25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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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 0.25km

  • 5 지점

    TOP 박해시기 홍주 최대의 순교 터, 홍주 옥

    박해시기 홍주 최대의 순교 터, 홍주 옥

    홍주 옥은 조선시대 때 천주교박해가 계속되는 동안 홍주로 끌려 온 천주교신자들이 갇혀있던 옥이다. 박해시기 동안 많은 순교자를 낸 홍성지역 최대의 순교 터였던 이곳 순교자들의 옥중생활은 비참했다 한다. 형벌에 의한 장독, 굶주림과 질병, 옥리들의 괴롭힘 등은 옥중생활을 단축시켰고 이 때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순교했던 것. 게다가 옥중 교수형에 처해진 순교자의 수가 많았던 것은 박해자들이 손쉽게 신자들을 처리하기 위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중 순교자에 대한 기록으로는 모두 113명이 교수형과 옥사로 순교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 다음 순례지 찾아가는 길
    내비게이션 이용 명칭검색: 홍성군청,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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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 약 3분 / 398m

  • 6 지점

    TOP 충청지역 최초의 순교자를 낸, 신앙증거 터 목사 동헌

    충청지역 최초의 순교자를 낸, 신앙증거 터 목사 동헌

    홍주성 홍주 목사 동헌에서는 박해시대 때 천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된 지도층 신자들이 문초와 갖은 고문을 받았던 곳이다. 천주교 순교성지로서 홍주 동헌을 이야기할 때 충청지역 최초의 순교자였던 원시장 베드로의 일화는 빼놓을 수 없다. 55세 때 천주교에 입교하여 61세의 나이로 순교한 원시장 베드로는 홍주 ‘윽전리’(현 충남 당진군 합덕읍 성동리의 ‘응정리’)에 있는 부유한 양민(良民) 집안에 태어났다. 본래 성품이 인색하였지만 천주교 신자로서의 삶을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보살피는 등 후덕하고 인자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후 원시장 베드로는 그의 사촌인 원시보 야고보와 더불어 깊은 신앙의 신자로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의 길을 갔다.
    1791년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홍주 목사는 원시장 베드로를 잡아들여 배교할 것을 설득하였으나 배교를 거부하자 온갖 문초와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하기에 이르고 마침내 원시장 베드로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가족의 소식을 전하며 가족의 정에 호소하기도 했다. 배교하면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으니 신앙을 포기하라는 목사의 말. 이 말은 들은 원시장 베드로는 “자녀들 이야기를 들으니 제 마음이 크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친히 저를 부르시는데, 어찌 그분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홍주 목사는 원시장 베드로를 매로서 사형을 집행할 것을 명령한다. 종일토록 매질은 가해졌으나 숨이 끊어지지 않자 다시금 찬물을 끼얹어 동사시킬 것을 명한 후에야 원시장 베드로는 얼려 죽어 순교를 했다. 당시는 1793년 1월 28일, 혹한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 다음 순례지 홍주 형장 터 찾아가는 길
    내비게이션 이용 명칭검색: 덕산통사거리,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조양로 103번길 북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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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 약 2분 / 381m

  • 7 지점

    TOP 홍주 형장 터 그리고 황일광 시몬 복자

    홍주 형장 터 그리고 황일광 시몬 복자

    홍주 형장 터는 홍주 옥에 갇혀있던 사형수들을 홍주성 북문 밖 월계천변에 있는 형장으로 끌고 와 사형을 집행하던 곳이다. 천주교 신자로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잡혀 온 황일광 시몬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한 역사의 현장이자, 이후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고결한 피를 흘리며 순교한 순교성지다.
    “지금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나 이미 배운 교리는 참으로 이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빨리 사형을 당하는 게 소원입니다.” 황일광 시몬이 온갖 문초와 고문을 당하면서도 배교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았던 포도청 진술의 일부만 보더라도 그의 신심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천민출신임에도 신분을 뛰어넘는 신심을 가진 그는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열릴 시복식에서 복자(福者)로 추대될 124위 중 한 사람이다.
    홍주 형장 터의 첫 순교자 황일광 시몬은 홍주의 백정 출신으로 홍주에서 입교하여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살다가 서울에서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고향으로 보내 처형함으로써 홍주의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라.”는 판결에 의해 그는 홍주로 이송되어 이곳 홍주 형장 터에서 참수를 당해 순교의 마지막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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