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목적별코스 나를 찾아 충남으로 떠나는 성지순례

나를 찾아 충남으로 떠나는 성지순례

  • 솔뫼성지
  • 버그네장터(함덕성당 가는 길)
  • 합덕성당
  • 신리성지 가는길(내동마을)
  • 신리성지
상세교통정보보기 좋아요3
  • 1 지점

    TOP 솔뫼성지

    솔뫼성지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까지 가는 길은 솔뫼성지가 출발점이다.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가 나고 자란 곳이자, 그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 조부 김종한 안드레아, 부친 김제준 이냐시오, 이렇게 4대가 살았던 생가 터가 있는 곳이다.
    ‘솔뫼’의 ‘뫼(山)’를 뜻하는 성지의 정문을 들어서면 성지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예수의 십자가상과 마주한다. 이곳에서 김대건 신부의 생가로 향하면 그가 순교한 장소 모래밭을 뜻하는‘솔뫼 아레나’라는 원형공연장을 지나게 된다. 다시 아레나 공연장을 지나면 조선시대의 전형적 한국 여성의 모습의 성모상으로 이어지고 성모상을 뒤로하면 김대건 신부의 생가로 동선을 이어진다. ‘ㄱ’자 집 과 우물, 장독대 등이 남아있다. 생가는 현재 성체조배실로도 사용되고 있다. 생가의 뒤는 성지의 이름이 유래되는 솔밭이 있고 솔밭으로 오르면 그의 동상과 마주할 수 있다. 솔밭의 남쪽 끝, 기념 성당겸 기념관에서 솔뫼성지 탐방을 마친다.
    상세보기
  • 이동

    도보-25분,2.10km

  • 2 지점

    TOP 버그네장터(함덕성당 가는 길)

    버그네장터(함덕성당 가는 길)

    솔뫼성지를 뒤로하고 합덕읍으로 향한다. 합덕공용버스정류장에서 남쪽으로 길을 잡아 고개너머 합덕읍의 ‘버그네장터’가 첫 목적지. 박해기에 내포의 교우들이 비밀스럽게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보를 주고받던 장터로 지금도 전통오일장(5, 6일)이 열린다. 다시 읍내길을 따라 합덕초등학교로 길을 잡는다. 합덕초등학교를 지나 내리 걸으면 닿게 되는 합덕삼거리, 농경지로 변모한 합덕제가 한눈에 들어온다. 삼거리에서 합덕재를 바라보며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농어촌공사 동부지소에 이를 수 있다. 농어촌공사를 끼고 골목길로 들어서면 합덕성당이 길 끝에 보인다.
    상세보기
  • 이동

    도보-30분,2.47km

  • 3 지점

    TOP 합덕성당

    합덕성당

    우리나라에 세워진 가톨릭 성당건축은 100여년의 박해 끝에 이룩된 하나의 종교적 성과라 할 수 있다. 기나긴 박해와 격동기를 이겨낸 신자들의 신앙심으로 이루어진 결정체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성당 건축을 단순히 예술적이나 미적 측면만 보는 것 보다 그 역사 또한 돌이켜보아야 할 것을 권한다. 그러므로 합덕성당에 가면 순교자들의 정신을 반석 삼아 이 아름다운 성당이 비로소 존재되고 있다는 것을 되 새겨 볼일이다.
    상세보기
  • 이동

    도보-1시간,5.16km

  • 4 지점

    TOP 신리성지 가는길(내동마을)

    신리성지 가는길(내동마을)

    합덕성당에서 신리성당까지 가는 길은 성당의 서쪽 합덕제 제방 길을 따라가며 순례길을 잇는다. 성당의 언덕과 마주보고 있는 서야고등학교 사잇길을 지나면 제방위의 이정표가 반긴다. 합덕읍의 지명은 합덕제에서 유래됐다. 합덕제를 만들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수만장정이 모여 제방을 쌓고 보수하였으므로 이 수고로움을 통칭하여 ‘합심덕적(合心德績)’이라 했다.
    합덕제를 지나는 신리성지로의 순례길은 합덕제 중수비가 늘어서 있는 대호리까지 1.5km, 제방길의 대부분을 걸으며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협동심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중수비에서 11시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합덕제를 뒤로하고 대호리 뒷산을 넘어가면 합덕대로로 길은 이어진다. 내동마을 사거리에 닿는 것.

    내동마을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합덕대로를 따라 걷는다. 합덕대로를 따라 1km 남짓 걷다보면 궁리로 향하는 고갯길로 접어들게 되고 고갯마루에서 무명순교자의 묘를 만나게 된다.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619번 지방도상의 궁리 농어촌버스 정류장에 닿는다. 버스정류장에서 동쪽으로 100m 남짓 걸으면 당진시의 곡창 지대로 들어서게 된다. 바둑판처럼 농지정리가 잘 되어있는 합덕의 평야지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 속에는 신리성지가 자리 잡고 있다.

    신리성지가 위치하고 있는 신리는 100년 박해기 동안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촌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이전까지 약 4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신리의 교우들은 당시 주교를 비롯하여 선교사제들의 활동에 결정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신리가 내포지역 포교의 거점역할을 하는데 기여했다.
    상세보기
  • 5 지점

    TOP 신리성지

    신리성지

    1865년에 위앵 민 신부, 도리 김 신부, 볼리외 서 신부, 이렇게 세 명의 선교사제가 입국하여 전교활동을 했다. 당시 천주교회의 존립과 전파라는 천주교회의 본질적인 요청을 자신들의 지위와 활동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리성지는 조선교구 5대 교구장을 지낸 성 다블뤼 안 주교가 1845년 10월 12일 김대건 신부와 함께 전북 익산 나바위에 첫 걸음을 내딛은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간 지낸 곳이다.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서 머물던 다블뤼 주교는 오메트르,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와 함께 1866년 3월 신리에서 1km 떨어진 거더리에서 체포돼 3월 30일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상세보기
충남날씨관광 안면도투자유치 관광지도신청 충남관광전자책 이달의테마여행 시티투어 관련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