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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충남여행길 공모전 게시판충남을 방문하신 분들의 소중한 기억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저마다의 특색있는 경험을 즐거움과 미소로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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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사의 겨울 풍경

  • 출처김**
  • 등록일2017-12-14 17:18:52
  • 조회수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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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천장사를 찾은 것은 201712월 중순이었습니다. 재작년에 최인훈의 소설 길 없는 길을 읽었는데 천장사의 설경을 극찬했더군요. 사실은 저도 그때 천장사를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고장에 있는 사찰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꼭 한 번은 가봐야지.’ 하는 마음 속의 호기심을 누르고 있다가 우연히 계룡산 등반을 갔다 오다 시간이 남았기에 나선 길이었습니다. 

 

하늘이 감추어둔 보배라 하여 天藏寺라 했던가 봅니다. 그 이름만큼이나마 사찰로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멀고도 험난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길이 전부 포장되어 있지 않고 길의 양쪽 가장자리만 레일처럼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절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그렇게 했다는데 나름대로 특이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고북면 장요리의 외딴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그 길은 겨우 차 한 대가 지날 정도의 좁은 사행(蛇行)길이었습니다. 행여 마주 오는 차라도 만난다면 속절없이 산 속에 갇히게 될 형국이었습니다. 차안에서도 몸을 있는 대로 뒤로 젖혀야만 제대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S자형의 급경사 길을 20여 분 정도를 달리다 보니 천장사 주차장이라 써 붙인 조그만 나무 푯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부터는 더 이상 차량을 운행할 수 없사오니 걸어서 가십시오.”란 안내문을 보니 일순 긴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푯말의 안내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려다 시멘트 바닥에 검은 타이어 자국만 남긴 채 길은 거기서 뚝 끊기고 말았더군요. 마치 탐험대를 거부하는 미지의 처녀림처럼 말이죠. 

 

천장사 바로 밑에서 사찰로 오르는 길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최근에서야 연암산 중턱 밑으로 돌계단을 쌓아 관광객들이 도보로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만든 지름길이 하나 있고, 주차장에서 오른 쪽 골목으로 꺾어 돌면 시멘트로 완전하게 포장해서 겉모양새나마 도로 비슷한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이 바로 천장사로 오르는 두 번째 길이랍니다. 

 

저는 일부러 편하게 오를 수 있는 돌계단을 마다하고 용기를 내어 깎아지른 듯 가파른 경사로를 우회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열 걸음도 못 가서 이내 후회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울기가 30도는 족히 될 법한 그 길은 산짐승처럼 다리를 잔뜩 구부려야 겨우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길은 가팔랐습니다. 도대체 어떤 보물을 숨겨 놓으려고 이처럼 험한 곳에 사찰을 세웠을까? 헉헉 단내가 나도록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이런 궁금증은 산행 내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궁금증은 천장사 산신당의 칠층석탑 앞에 선 순간 금세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 이래서 천장사로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송강 정철 선생이 관동별곡에서 읊조리기를 금강산의 진면목이 비로소 여기에서 다 보인다고 하였듯이, 정말 고북면 일대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심지어 서산 시내뿐만 아니라 멀리 태안의 바다까지 아득하게 보일 정도로 탁 트인 시야가 그 동안의 고생을 한 순간에 보상해 주고도 남았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경치를 질리도록 감상한 뒤에야 산신당 앞에 세워진 표찰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사찰에 대한 유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몇 번이나 읽으며 메모해 두었던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천장사. 고북면 장요리 연암산에 있는 암자로 천장사의 창건연대와 탑의 조성 연대는 전해지는 문헌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사찰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백제 무왕 34(633)에 담화선사가 수도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말 고승 경허 선사와 근세의 고승 송만공(18711946) 대사가 이곳에서 불법을 계승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송만공 대사가 득도한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비록 사찰의 규모는 작지만 연암산의 경치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눈이 내린 뒤의 설경이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표찰의 내용처럼 천장사는 암자에 가까웠습니다. 세련되지 않은 소박한 시골 아낙네의 모습으로 그렇게 다소곳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천장사와 관련된 경허 선사의 일화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경허 스님이 천장사에서 일 년 반 정도 머물러 계실 때의 일이랍니다. 어느 여름 밤 만공 스님이 볼 일이 있어 경허 스님이 누워 계시는 쪽방으로 갔다가 얼떨결에 보니, 스님의 배 위에 길고 시꺼먼 구렁이 한 마리가 걸쳐 있었다고 합니다. 만공 스님이 소스라치게 놀라 

 

스님 이게 무엇입니까?” 하니, 경허 스님 왈, 

 

가만히 두어라. 내 배 위에서 실컷 놀다 가게.” 하고는 쫓지도 않고, 그대로 태연히 누워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선사의 법문이 있으셨는데 

 

그런 데에 조금도 동요됨 없이 자기 공부에 정진해야 성불하느니라

.” 

참으로 보통 사람의 담력으론 감히 따라하기 어려운 고승의 경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일찍 요사채의 뒤꼍을 돌아 나와 연암산 동쪽 정상에 서면 해돋이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넓은 공터에는 송만공 선사가 매일 같이 앉아서 연암산의 정기를 받아 世界一花란 네 마디를 일갈한 뒤 득도했다는 너럭바위가 있는데 보통 사람인 제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장소 같았습니다. 스님이라도 만나면 해돋이가 얼마나 장엄한지, 그리고 만공 선사께서 득도하신 과정과 득도 후의 행적 등을 자세히 묻고 싶었으나 묵언 수행 중이란 표찰만 방문에 걸린 채 도량의 여닫이문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댓돌 위에 가지런히 정리된 흰 고무신만이 방문객을 맞이할 뿐 그 어디에도 인기척은 없어 쓸쓸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성불은 왜 꼭 고독해야만 이룰 수 있는지 이제부터 저도 인생의 화두로 삼아 볼까 합니다. 

 

내려올 때에는 요사채 아래의 새로 난 돌계단을 선택했습니다. 좁은 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아름 드리 느티나무와 담쟁이덩굴이 뒤엉킨 모습이 묵은 세월의 정취를 한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돌계단을 조금 내려오다 보면 높이가 족히 10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절벽과 만나게 됩니다. 그 절벽 사이에서 투명한 석간수가 흘러나오는데 어찌나 신기한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게 됩니다. 이 석간수가 아마도 연암산 계곡물의 발원수가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작년에 연암산에 큰 산불이 나서 수백 년씩 묵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모두 불에 타버린 겁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모두 검게 변해버린 나무들뿐이어서 산수의 풍경은 정말 삭막합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천장사 주변만은 둥그런 원을 그리듯 용케도 화마(火魔)가 비껴가서 태곳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부처님의 가호가 있기는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맹렬한 화염 속에서 천장사 주변만 무사할 수 있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날이 벌써 어둑어둑한 것이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사찰의 경치에 넋을 빼앗겨 그만 반나절을 소비한 겁니다. 산중이라 그런지 어둠도 고적함도 더 빨리 찾아오는 듯 했습니다. 인기척이라곤 찾아 볼 수 없고 가끔 산짐승과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깰 뿐, 천장사의 겨울은 그렇게 깊은 동면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길 없는 길에서 선경에 버금간다고 극찬했던 천장사의 설경을 끝내 보지 못해 정말 아쉬웠지만 하는 수 없이 눈이 아주 많이 내린 날 다시 찾기로 하고 저는 그만 귀로 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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